하네스를 깔고, AI에게 책을 맡겨봤다 — 버그가 양파처럼 까였다
어제 방향만 튼 하네스를 오늘 실제로 코드로 깔고, agy에게 책 한 권을 통째로 맡겼다. 온보딩 낭독, 도메인 무관인데 박힌 본명, 깨진 표지가 한 겹씩 드러났다. 그리고 진짜 관문은 게이트 바깥에 있었다.
결론부터
어제는 "코드가 강제하는 하네스로 방향을 틀었다"고만 썼다. 오늘은 그 게이트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실제로 깔았고, agy(Antigravity)에게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겨봤다. 게이트는 작동했다. 그런데 진짜 어려운 문제는 게이트 바깥에 있었다.
무엇을 깔았나
세 개의 코드 장치를 박아 넣었다.
- 완성 게이트 (
verify_book.py) — 결과물 폴더를 코드가 검사한다. 저자 정체성, 일러스트 장수, 디자인 PDF의 판권·이미지, 분량·근거. 그리고 "완성"의 정의 자체를 "이 게이트를 통과했을 때"로 바꿨다. 통과 못 하면 그냥 미완성이다. - 단계 게이트 + 이어쓰기 (
book_state.py) — 프로젝트 폴더를 훑어 "어디까지 됐나"를 판정한다. 핵심은 에이전트의 자기 보고가 아니라 파일이 진실이라는 것. "다 했습니다"가 아니라, 실제로 그 산출물이 있는지를 본다. 중간에 멈춰도 남은 단계부터 이어쓴다. - 저자 정체성 — 내 전문 밖 주제는 본명을 쓰지 않고 가상저자(분신)로 쓴다. 이걸 코드가 검증한다.
옛 실패작 세 권에 이 게이트를 돌려봤더니, 일러스트 0장으로 끝낸 책, "PDF를 만들었다"면서 사실 HTML만 있던 책을 정확히 미완성으로 잡아냈다. 막연한 의심이 아니라 코드의 판정으로.
그리고 agy에게 시켜봤다 — 버그가 양파처럼 까였다
배포하고, agy에게 "시장에서 팔리는 주제로(내 분야와 무관하게)" 책 한 권을 통째로 맡겼다. 문제가 한 겹씩 까였다.
1. 온보딩이 대화가 아니라 절차 낭독이었다. 환경도 내 프로필도 이미 다 저장돼 있는데, 그걸 줄줄 읊고 "맞죠? 넘어갈까요?"를 두 번 물었다. 내가 "응?" 하고 되물었더니 "네, 확인됐습니다" 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. → 이미 갖춰졌으면 게이트는 조용히 통과하고, 모호한 대답("응?"·되물음·침묵)을 승인으로 처리하지 않게 막았다.
2. "도메인 무관"이라 했는데 내 본명을 박았다. 노션 템플릿 부업이라는, 내 전문(디자인)과 다른 주제였는데도 agy는 "저자가 디자인 전문이니 이것도 그 분야 안"이라고 멋대로 판정하고 본명으로 저자를 세팅했다. → 내가 처음에 고른 경로(시장 리서치냐, 내 도메인이냐)는 에이전트가 조작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. 그걸 코드에 묶어, "시장 경로인데 본명"이면 통과 못 하게 했다.
3. 표지에 책 제목 대신 "확정 주제 정의서"가 박혔다. 기획 단계 문서의 양식 제목이 표지·판권에 그대로 들어갔고, 차례 뒤엔 빈 페이지와 내부용 마커까지 노출됐다. 조판 빌더의 버그였다. → 제목을 폴더명에서 제대로 잡고, 마커를 화면에서 빼고, 페이지 분할을 고쳤다.
진짜 관문은 게이트 바깥에 있었다
여기서 두 가지를 인정해야 했다.
- 그 깨진 표지 PDF를, 내 완성 게이트가 통과시켰다. 게이트는 "쪽수·판권·이미지가 있나"는 보지만 "표지 제목이 멀쩡한가"는 못 본다. 구조는 보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못 본다. 게이트를 만드는 것과, 게이트가 옳은 것을 보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.
- 더 근본적으로, 그 게이트를 agy가 스스로 돌렸다는 증거가 없다. 내가 사후에 돌려서 통과가 나온 거지, 에이전트가 자기 결과를 자발적으로 검증하고 실패에 반응한 게 아니다. 게이트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, 에이전트가 그걸 거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.
남는 생각
어제 "지시가 아니라 구조"라고 썼는데, 오늘 보니 그 구조에도 층이 있었다. 게이트를 만드는 일, 게이트가 옳은 것을 보게 하는 일, 그리고 에이전트가 그 게이트를 스스로 거치게 만드는 일. 셋은 전부 다른 문제다.
AI에게 일을 맡긴다는 건, 결국 이 층들을 하나씩 메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. 오늘은 첫 번째 층을 깔았고, 두 번째·세 번째 층이 눈에 들어왔다. 다음은 게이트에 "눈"을 달고, 에이전트가 그 앞을 지나가지 않고는 끝낼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