덮어두는 것들 — 11·12·13화 전문 (방석 · 한 돈 · 첫차)
어머니는 제사 때마다 아버지가 열아홉에 저수지에서 아이를 건졌다고 말한다. 사촌이 1971년 기사를 찾아낸다. 어머니 반지 안쪽에는 곁에 없던 아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. 첫차 시간표의 05:40 옆에만 손톱자국이 있다. 연작 「덮어두는 것들」 11·12·13화 전문과, 세 편을 그렇게 쓴 이유.
연작 「덮어두는 것들」 11·12·13화 전문이다. 1화 「사전」은 여기, 2·3·4화는 여기, 5·6·7화는 여기, 8·9·10화는 여기에 있다.
이 연작은 규칙 하나로 쓴다. 매 편에 물증이 하나 나오고, 인물이 그걸 덮는다.
- 1화 「사전」 — 자기 오역을 덮는다
- 2화 「간」 — 자기 솜씨를 덮는다
- 3화 「봉투」 — 사람을 덮는다
- 4화 「대출카드」 — 남이 덮어준 것을, 못 본 자리에 그대로 둔다
- 5화 「배나무」 — 연도를 덮는다
- 6화 「상장」 — 아이 이름을 덮는다
- 7화 「셔터」 — 고맙다는 말을 덮는다
- 8화 「고장」 — 이유를 덮는다
- 9화 「B형」 — 자기 몸을 덮는다
- 10화 「두 갈래」 — 남의 몫을 덮는다
- 11화 「방석」 — 아버지를 건진 사람을 덮는다
- 12화 「한 돈」 — 반지 안쪽의 자기 이름을 덮는다
- 13화 「첫차」 — 서지 않는 정류장을 덮고, 덮는 법을 남에게 건넨다
세 편 합쳐 읽는 데 7분쯤 걸린다.
11화 — 방석
아버지 기일은 시월이다. 상을 물리고 과일을 깎을 무렵이면 어머니가 같은 얘기를 꺼낸다. 네 아버지가 열아홉에 저수지에 뛰어들어 애를 건졌다고.
여름이었고 저수지였고 아이가 허우적거렸다. 네 아버지가 신도 안 벗고 들어갔다.
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도 그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웃기만 했다. 고치지도 보태지도 않았다.
사촌동생이 족보를 정리하고 있다. 지난달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. 1971년 7월 신문 기사다.
저수지에 빠진 국민학생 박상철 군(10)을 지나던 청년 김용수 씨(19)가 구했다고 적혀 있다.
박상철은 아버지 이름이다. 아버지는 1961년에 났다.
그는 사진을 끝까지 확대해 봤다. 답장은 안 했다.
이틀 뒤 사촌한테서 전화가 왔다. 그는 받지 않았다. 이튿날에는 부재중 표시가 하나 더 남아 있다.
주말에는 사촌이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. 손에 기사를 크게 뽑은 종이가 들려 있다. 그는 그 종이를 받지 않았다.
사촌은 이분을 찾아보자고 했다. 일흔넷이면 아직 살아 계실 수도 있다.
그는 어머니 앞에서는 꺼내지 말라고만 했다. 사촌이 종이를 도로 접으며 말했다. 숙모님도 아셔야지. 제사 때 내가 말씀드릴게.
제사 전날 밤에 그는 사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. 올해는 식구끼리 지낸다.
옆에 붙은 1이 금방 사라졌다. 그런데 답은 오지 않았다.
과일을 깎을 무렵 어머니가 또 그 얘기를 꺼낸다. 신도 안 벗고 들어갔다고. 그는 아버지가 하던 대로 웃기만 했다.
방석은 식구 수만큼 꺼냈다. 다들 사촌이 앉던 쪽으로 조금씩 당겨 앉았다. 빈자리는 이제 안 보인다.
12화 — 한 돈
어머니가 지난달에 돌아가셨다. 마지막 칠 년은 누나가 그 집에 들어가 같이 살았다.
그는 서울에 산다. 명절이면 내려가 하룻밤 자고 올라온다.
발인 다음 날 누나가 보석함을 그에게 내밀었다. 금붙이는 네가 가서 팔아. 반씩 하자. 나는 못 하겠다.
누나가 짐을 싸 들고 들어간 게 2019년 4월이다. 그해 봄 어머니가 욕실에서 처음 넘어졌다.
누나는 그달로 학원 일을 그만뒀다. 그 칠 년 동안 그가 거른 송금은 한 번도 없다.
어머니는 반지를 칠 년 내내 끼고 있었다. 병원에 들어가던 날 누나가 손가락에서 빼 보석함에 넣었다.
동네 금은방 주인이 금붙이를 하나씩 저울에 올렸다. 반지 차례가 오자 주인이 확대경을 집는다.
안쪽을 한 바퀴 돌려 보더니 소리 내어 읽었다. 정훈, 2019. 4.
그의 이름이다.
주인이 반지를 유리 위에 내려놓았다. 녹이면 이 글씨는 없어집니다. 반지는 따로 두셔도 돼요.
그는 반지를 저울 쪽으로 도로 밀었다. 같이 녹여 달라고 했다.
저울에 3.75가 뜬다. 한 돈이다. 그날 받은 돈을 둘로 나눠 누나 통장에 반을 보냈다.
저녁에는 둘이 어머니 집 부엌을 치운다. 누나가 그릇을 신문지에 싸다가 물었다. 반지도 녹였어?
응.
누나가 그릇을 내려놓았다. 안쪽도?
13화 — 첫차
박 기사는 이 노선을 십일 년 몰았다. 새벽 첫차는 손님이 적다.
여섯 번째 정류장은 논 가운데 있다. 회차지까지 배차 간격을 맞추려면 그 앞에서 2분이 필요하다.
그는 언제부턴가 그 정류장을 지나친다.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닫는 데 걸리는 시간이 딱 그만큼이다.
아무도 안 탄다. 회사에 들어온 민원도 없다.
삼 년 전 여름에 비가 왔다. 그날 백미러에 우산이 하나 보였다. 우산이 기울면서 손이 올라갔다.
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. 그 뒤로 그 구간에서 백미러를 안 본다.
그 정류장 기둥에 종이 시간표가 붙어 있다. 코팅이 벗겨져 가장자리가 말렸다.
맨 윗줄 05:40 옆에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있다. 한 번 그은 게 아니라 여러 번 덧그어서 종이가 하얗게 일어났다.
그런데 그 아래 06:20 옆에는 자국이 없다.
회사 운행 기록은 전산으로 남는다. 그 정류장 통과 시각은 삼 년 내내 05:38이다.
이달부터 신입이 붙었다. 스물여섯이고 면허를 딴 지 두 해 됐다.
인수 운행 사흘째 새벽, 신입이 여섯 번째 정류장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.
여긴 안 서도 돼.
사람 있으면요.
없어. 십일 년 동안 없었어.
신입이 액셀을 다시 밟았다. 더 묻지 않았다. 앞자리에 십일 년이 앉아 있었다.
그날 아침 차고에서 신입이 노선표를 받아 적었다. 박 기사가 여섯 번째 칸에 사선을 그어 줬다. 여기는 그냥 통과.
신입이 그대로 옮겨 적었다. 이유는 안 물었고 그도 말하지 않았다.
다음 주부터 신입이 혼자 첫차를 몬다.
왜 이렇게 썼나
세 편은 덮는 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한 칸씩 밀었다.
11화는 덮는 걸 막는 사람이 처음으로 물러서지 않는 편이다. 9화의 직원은 정정 신청서를 한 번 권하고 물러섰다. 11화의 사촌은 전화를 두 번 걸고, 회사 앞까지 찾아오고, 제사 때 말하겠다고 한다. 그래서 이 사람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치운다. 메시지 한 줄로 사촌을 제사에서 빼고, 방석을 식구 수만큼만 꺼내 빈자리를 없앤다. 아버지도 살아서 그 얘기에 웃기만 했고, 그도 아버지가 하던 대로 웃는다. 8화의 목욕탕 주인은 까닭을 모른 채 물려받았는데, 11화의 아들은 알고 물려받는다.
12화는 되돌릴 수 없는 쪽으로 갔다. 1화부터 11화까지는 덮어도 물건이 남았다. 사전, 봉투, 대장, 상장, 딱지, 통보서, 옛 신문. 마음을 바꾸면 도로 꺼낼 수 있는 자리였다. 12화의 사람은 반지를 녹인다. 금은방 주인이 따로 두라고 권했다. 그런데 그는 반지를 저울 쪽으로 도로 민다. 이제는 그도 그 글씨를 다시 못 본다. 물증도 이 연작에서 처음으로 금속이다.
13화에서는 덮는 일이 처음으로 남에게 넘어간다. 1화부터 12화까지는 혼자 덮거나, 모르고 이어받거나, 알고 이어받았다. 박 기사는 아는 쪽이고 신입은 모르는 쪽이다. 노선표에 사선 하나를 그어 건네면 신입은 이유를 묻지 않고 옮겨 적는다. 이 묶음을 엮으며 8화를 다시 읽었다. 목욕탕 24번 사물함에 겹쳐 붙은 「고장」 종이 세 장 가운데 맨 아래 한 장도 이렇게 건네졌을 수 있다. 8화는 덮는 일이 몇 손을 건넌 뒤의 모습이고, 13화는 처음 건네는 손이다.
물증은 이번에 셋 중 둘이 뺄셈이다. 1971년 기사의 열 살과 1961년생 아버지, 시간표의 05:40과 운행 기록의 05:38. 12화만 맞추기다. 반지 안쪽의 「2019. 4.」와 누나가 짐을 싸 들고 들어간 2019년 4월이 같은 달이라는 걸 읽는 쪽이 맞춘다. 딸이 곁에 들어온 달에 어머니가 아들 이름을 새겼다. 왜 새겼는지는 끝까지 안 적었다.
끝은 12화에서 한 번 바꿨다. 6화부터 11화까지 여섯 편을 덮는 동작으로 끝냈는데, 12화는 녹인 뒤에 누나의 물음 「안쪽도?」를 두고 그의 대답 없이 끊었다. 누나가 각인을 알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만 열어 둔다. 한 편으로 어느 끝이 낫다고 판정할 수는 없어서, 13화는 다시 덮는 동작으로 끝냈다.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바꾸지 않기 위해서다.
덮는 동작은 셋이다. 방석을 식구 수만큼 꺼낸다. 반지를 저울 쪽으로 민다. 칸에 사선을 긋는다.
전문으로 옮기면서 손본 데를 적어 둔다. 스레드판은 첫 글에 물증부터 보이고 이어지는 글에서 이야기를 푼다. 여기서는 그 첫 글을 뺐다. 세 편 다 같은 사실이 이야기 안에 이미 있다. 11화만 첫 글의 한 문장(「네 아버지가 열아홉에 저수지에 뛰어들어 애를 건졌다고」)을 첫 단락에 합쳤다. 13화는 스레드판에서 12화를 불러오던 두 단락과, 마지막 글의 연재 안내와 독자에게 묻는 두 갈래 물음을 뺐다. 그 밖의 문장은 스레드에 나간 그대로다.
14화 「동판」부터는 스레드에 이어 나가고 있다.